지방 소멸과 관광: 지속 불가능한 외부 유입 정책의 한계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지자체가 선택하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관광 활성화다. 사람이 떠나가는 지역에 잠시라도 외지인을 불러들이면 경제가 돌고, 활력이 생긴다는 논리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단기적인 방문자는 늘어날 수 있지만, 지속적인 정착 인구 증가나 지역 공동체 재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25년 현재,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수십억 원 규모의 축제, 브랜드 마케팅, 관광지 개발을 시도했지만, 지방 소멸 속도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관광 산업 중심의 지방 소멸 대응 전략이 왜 실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지속 가능한 마을 재생을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지방 소멸 지역에서 관광 유입이 만든 불균형 구조
지방 소멸 마을에서 관광은 때때로 ‘희망 고문’에 가까운 역할을 한다. 관광객이 몰리면 일시적으로 상권이 살아나는 듯 보이지만,
대부분의 수익은 외지 기업이나 단기 인력, 플랫폼으로 흘러가고 지역 주민의 실질적인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가 반복된다.
예를 들어 한 강원도 산촌 마을은 SNS를 통해 ‘감성 여행지’로 유명해졌지만, 정작 마을 상점은 외부 프랜차이즈가 장악하고,
지역 주민은 교통 혼잡과 쓰레기, 민원 처리에만 시달리는 결과를 낳았다. 더욱이 관광객이 원하는 ‘비현실적이고 전시된 시골 이미지’는 지역 일상과 괴리감을 만들며, 마을의 삶을 쇼처럼 소비하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결국 관광이 오히려 지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마을 정체성을 훼손하며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지방 소멸 대응 수단으로서 관광이 실패하는 구조적 이유
관광은 기본적으로 ‘잠깐 머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산업이다. 반면 지방 소멸의 문제는 ‘오래 사는 사람’이 없다는 데서 시작된다. 이 간극이 해결되지 않으면, 관광은 지방에 단기적 활력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속 가능한 마을 생존 전략으로 기능하긴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기반 시설이 지역 정주민을 위한 인프라와 정반대 방향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리조트 개발, 대규모 주차장, 관광형 상업시설은 마을의 일상적 흐름과 어울리지 않으며, 공공 자원을 외부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축제나 이벤트 중심의 관광은 계절성에 따라 수익이 급변하며, 고용도 일시적인 단기 계약직 위주로 형성돼 지역의 장기적 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관광 중심 전략은 지방 소멸의 본질을 비껴간 단기 처방일 뿐이며, 실제 사람을 남게 만들 수 없는 구조다.
지방 소멸과 관광이 공존하기 위한 가능성은 없는가?
그렇다면 관광은 지방 소멸 대응 전략에서 완전히 배제돼야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핵심은 관광의 목적이 ‘방문’이 아닌 ‘관계’로 전환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전북 진안의 한 마을은 외부인을 단순 소비자가 아닌, 프로젝트 참여자와 협력자로 초대하는 ‘로컬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방문자는 마을 농업, 교육, 리모델링 작업에 참여하며, 실제로 장기 체류 또는 이주로 이어진 사례도 많다.
또한 경남 하동은 관광 콘텐츠를 지역 어르신들의 구술사와 결합한 해설형 투어로 발전시켜, 수익이 마을 공동체에 재투자되는 구조를 설계했다. 이런 방식은 관광을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관계 형성 → 체류 → 정착의 흐름으로 확장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즉, 관광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방 재생 구조 안에 어떻게 통합되느냐가 관건이다. 이것이 가능할 때, 관광은 지방 소멸을 늦추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지방 소멸 대응은 소비가 아닌 ‘삶의 설계’로 전환돼야 한다
지방 소멸을 진짜로 늦추려면, 사람이 '잠시’가 아닌 ‘오래’ 살 수 있는 구조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관광은 그중 일부가 될 수는 있어도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지속 가능한 마을은 거주, 일, 관계, 교육, 돌봄이 함께 작동하는 공간이며, 그 위에 관광은 부가적 자원으로 덧붙여질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지방 정책은 외부 유입 수치를 높이기보다, 내부 정착률, 주민 삶의 질, 공동체 유지력 같은 질적 지표 중심으로 평가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엔 반드시 지역 주민의 자율성과 정체성이 보장된 공간 설계가 있어야 한다. 지방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야 할 터전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만 소멸을 막을 수 있다.
관광은 지방을 돕는 손님이 될 수 있지만, 주인이 되어줄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잠깐의 방문’이 아니라, 영구적인 관계 설계다.
맺으며,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관광 중심 전략은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생존 구조를 만들긴 어렵다. 지금까지 많은 마을이 축제, 관광지 조성, 브랜드 마케팅 등에 집중했지만 실질적인 정착 인구 증가나 공동체 회복으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앞으로의 전략은 관광을 ‘관계 기반 체류형 모델’로 전환하고, 그 중심에 정주 인프라와 주민 중심 공간 설계를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방 소멸을 늦추는 진짜 해법은 관광보다 삶의 설계에 있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마을,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이 모든 것이 함께 설계될 때 지방은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