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 지역에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의 현실
지방 소멸이란 단순히 사람이 줄어드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기르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되는 과정이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가정에게 지방은 때로 ‘살 수 없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2025년 현재, 전국 읍·면 단위의 초등학교 중 300곳 이상이 전교생 3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이며,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은 100곳을 넘고, 육아 지원시설이나 학원이 없는 곳은 수도 없이 많다. 그 결과, 젊은 부모는 지방을 떠나고, 남은 마을은 고령자만으로 구성된 미래 없는 공동체가 되어간다.
이 글에서는 지방 소멸 지역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리고 그 안에서도 어떻게 새로운 대응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지방 소멸 지역의 육아 현실: 단절과 결핍의 연속
지방 소멸 지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선택의 연속이다. 교육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유치원이 읍내에 하나뿐이고, 아이를 등하원시키기 위해 부모가 하루에 4번 이상 차량 운행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 흔하다. 산부인과, 소아과, 치과는 기본적으로 없고, 예방접종조차 시내 병원에 예약하고 1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구조다.
그뿐만 아니라, 놀이시설, 도서관, 미술학원 등 도시에서는 당연한 시설이 전무한 곳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는 늘 ‘이게 아이에게 좋은 환경인가?’라는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결국 교육과 보육의 불균형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과 부모의 자책감으로 이어지고, 장기 거주를 포기하고 도시로 떠나는 요인이 된다.
지방 소멸은 단지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키울 수 없는 공간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지방 소멸 지역에서 자녀 양육이 유지되는 사례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방 소멸 지역에서는 자녀 양육을 가능하게 만든 마을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전남 강진의 한 농촌 마을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대안 마을학교 + 마을 유치원 + 공동육아 공간’을 운영 중이다. 이 구조는 지자체가 시설을 제공하고, 부모들이 교육 프로그램과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자치형 교육 커뮤니티 모델’이다.
또한 강원 홍천의 한 산촌 마을은 청년 부모 7가구가 모여 공동 주거, 공동 보육, 공동 텃밭 운영을 하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직접 설계했다. 이 마을은 정기적으로 육아세미나, 마을축제, 돌봄 교대제를 운영하면서 단지 육아 부담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 키우는 문화를 공동체 전체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지방 소멸 대응에 있어 ‘개별 가정’이 아닌 ‘공동체 단위 육아 생태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지방 소멸 대응 정책에서 누락된 ‘자녀 양육’ 요소
지방 소멸 대응 정책은 주로 인구 유입, 일자리, 청년 창업, 주거 지원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정작 자녀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인프라와 제도는 취약하거나 누락된 경우가 많다.
첫째, 육아 인프라 투자 부족. 지방 예산에서 보육시설, 방과 후 교실, 육아 커뮤니티 등에 대한 투자가 ‘선택적 편의’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문화적 배려의 부족. 도시에서 온 부모와 기존 주민 사이에는 양육 방식, 교육 가치관, 공동체 생활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지만 이를 조율하는 구조는 거의 없다.
셋째, 자녀 양육과 연계된 이주 지원의 미비.아이를 키우기 좋은 마을이라는 홍보는 많지만, 실제로는 의료·교육·놀이터·친환경 먹거리 같은 기본적인 양육 환경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선 단순히 부모를 유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지방 소멸 시대, 아이와 부모가 함께 머무는 마을의 조건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해법은 아이를 중심에 두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은 ① 건강한 보육 인프라, ② 안전한 생활환경, ③ 사회적 지지 기반, ④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교육 자율성이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조건은 정책이 아닌 사람과 공동체가 만들어간다.
예를 들어 마을 공동 육아 플랫폼을 구축해 돌봄을 분담하고, 아이와 노인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구조를 만들면 세대 간 단절도 줄고, 공동체 회복도 가능해진다. 지방 소멸 대응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가 아니라 ‘아이 한 명이 오래 머물 수 있는 마을인가’이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곳에는 결국 누구도 머물 수 없다. 그래서 지방 소멸 대응은 아이 중심 마을을 설계하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
맺으며,
지방 소멸 지역에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힘든 일’이 아니라, 시스템과 인프라가 부재한 구조에서 살아남는 일이다. 그러나 일부 마을은 공동체 중심의 육아 실험을 통해 다시 사람이 모이고,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앞으로의 정책은 단지 인구 유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일상 환경의 설계에 집중해야 한다. 아이 한 명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마을. 그 마을만이 지방 소멸을 막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