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

지방 소멸과 청년 주거: 오래 머물기 위한 조건

nicetiger1417 2025. 7. 15. 14:32

지방 소멸 위기를 막기 위한 핵심 타깃 중 하나는 청년이다. 하지만 지방에 청년을 유입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가 있다. 바로 청년이 지방에서 오래 머물 수 있게 만드는 것, 즉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귀촌을 고민하는 청년 대부분은 ‘살 집이 없다’, ‘집은 있는데 너무 낡았다’, ‘살 수는 있지만 살기 싫다’는 의견을 반복한다.


이는 단순한 주택 수급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이다. 그렇기에 지방 소멸을 늦추려면 청년이 실제로 정착 가능한 주거 조건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고, 그 조건을 갖춘 주거 모델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지방 소멸을 늦추기 위해 청년 주거가 왜 핵심인지를 살펴보고, 실제 사례와 함께 청년이 ‘오래 살 수 있는 조건’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지방 소멸 : 청년이 오래 머무는 조건

지방 소멸 지역에서 청년 주거가 실패하는 이유

많은 지자체가 청년 유입을 위해 귀촌 창업지원금, 주택 수리비 보조, 빈집 연결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정착률이 낮고, 이탈률은 높다. 왜일까?

 

첫째, 공급되는 주택이 실제 청년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방충망조차 없는 창문, 단열이 되지 않는 주택은 비용이 낮아도 살기 어려운 조건이다.


둘째, 청년이 원하는 건 ‘단순한 집’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구조’이다. 일자리, 교통, 문화, 커뮤니티와 연결되지 않은 주택은 지속적으로 살기에는 불안정하다.


셋째, 주택 계약 구조와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청년이 혼자 감당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 즉, 청년이 지방에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왔지만 살 수 없어서 떠나는 구조’가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 주거는 단순 주택 공급이 아니라 살기 좋은 환경, 관계, 시스템을 포함한 전체 설계가 필요하다.

지방 소멸을 막는 청년 주거 모델①: 경남 남해 ‘청년 리빙랩’

경남 남해군은 ‘청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단순 임대가 아닌 청년 리빙랩(Living Lab) 주거 실험을 도입했다. 이 프로젝트는 ① 지역 내 빈집을 리모델링하고, ② 그 공간을 단순 주거가 아닌 작업 공간 + 커뮤니티 공간 + 공유 주방으로 구성하며, ③ 청년이 기획부터 운영까지 직접 참여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주거비는 시세보다 50% 저렴하며, 공간 내에는 지역 프로젝트 참여 기회와 지역민과 연결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함께 제공된다.


이 모델의 핵심은 집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이유를 포함한 집’을 만드는 데 있다. 현재 2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청년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고, 주거 공간을 중심으로 작은 창업, 문화 활동, 공동체 활동도 확장되고 있다. 이 사례는 지방 소멸 대응에서 청년 주거를 ‘공간’이 아닌 ‘삶의 플랫폼’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지방 소멸을 막는 청년 주거 모델②: 강원 평창 ‘다세대 코리빙 하우스’

강원 평창의 한 소규모 마을에서는 청년 정착률을 높이기 위해 다세대 코리빙(Co-living) 하우스를 도입했다. 이 구조는 ① 개인 침실 + 공동 거실·부엌·작업실 구조로 되어 있으며, ② 초기 입주 조건으로 지역 프로젝트 1개 이상 참여를 요구한다. 입주한 청년들은 공동으로 마을 행사 기획, 로컬 콘텐츠 제작, 텃밭 운영 등을 하며 자연스럽게 마을 주민과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이 코리빙 하우스에는 입주자 간 자율운영 회의와 자체 기금 제도가 마련돼 하우스 내부의 문화가 청년 주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현재 이 구조를 통해 이 마을에는 평균 3년 이상 거주하는 청년이 10명 이상 생겼고,그중 일부는 마을에 정착해 자립형 창업과 공동체 프로젝트를 지속 중이다. 이 사례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청년 주거가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구조’를 기반으로 설계돼야 함을 보여준다.

지방 소멸을 늦추는 청년 주거 설계의 핵심 조건

청년이 지방에 오래 머무르기 위해서는 단순히 ‘싸고 조용한 집’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설계가 담긴 주거 모델이 필요하다. 그 핵심 조건은 다음과 같다.

 

안전하고 쾌적한 물리적 공간 – 단열, 위생, 방범이 확보된 기본 주거 인프라가 전제되어야 한다.

관계 기반의 커뮤니티 주거 – 코리빙, 커먼스(공유 공간) 등을 통해 청년이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머물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지역과의 역할 연결 – 단순 거주자가 아닌 지역 일자리, 자원봉사, 프로젝트 등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연결 장치가 필요하다.
자율성과 유연성 – 청년 스스로 공간을 운영하거나 규칙을 만들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져야 주인의식과 지속성이 생긴다.


이러한 설계가 담긴 주거 모델만이 청년이 지방에 머무를 수 있게 하고, 결국 지방 소멸을 늦추는 실질적 전략이 된다.

맺으며,

지방 소멸은 사람이 떠나는 현상이지만, 그 사람이 머무를 수 없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청년 주거는 단순히 빈집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삶을 설계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남해의 리빙랩, 평창의 코리빙 하우스처럼 관계와 활동, 자율성과 기능이 담긴 주거 모델은 청년 정착률을 높이고 지방의 생존 가능성을 회복시키고 있다.


앞으로의 지방 정책은 ‘얼마나 많은 청년을 유치했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는가’를 기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방 소멸을 막는 건, 결국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