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

지방 소멸 시대, 마을 의료 시스템 붕괴와 대안 찾기

nicetiger1417 2025. 7. 28. 08:46

지방 소멸의 이면에는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를 넘어선, 생활 인프라의 붕괴가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의료 시스템의 붕괴는 마을이 유지되지 못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진료를 받으려면 읍내까지 수십 분을 차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은 일부 농촌과 산간 지역에서 이미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고령 인구가 전체의 절반 이상인 마을에서는 병원 접근성이 생존 그 자체와 직결된다. 의료 사각지대가 늘어나는 만큼,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은 텅 비게 된다. 지방 소멸은 숫자가 아니라, 돌봄과 의료가 끊긴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단순히 의료기관을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단위에서 작동할 수 있는 작고 강한 의료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지방 소멸과 의료시스템의 붕괴

지방 소멸 지역의 의료 시스템은 왜 무너졌는가

전국적으로 병원 수는 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지방의 읍면 단위에서는 기존에 있던 병원이나 보건소조차 문을 닫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응급실이나 산부인과처럼 필수적인 진료 과목을 운영하는 병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의료진 역시 지방 근무를 기피하면서 의사와 간호사 확보조차 어려워졌다. 특히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30분 안에 대응할 수 없는 지역이 많아지면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의료 접근성의 붕괴는 단순히 불편을 넘어, 사람들에게 ‘이곳에서는 아프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심어준다. 이런 심리적 불안은 실제로 주민의 이탈로 이어지고, 결국 마을이 무너지는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따라서 의료 시스템의 붕괴는 지방 소멸을 단순히 방관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위험으로 만든다.

지방 소멸을 늦춘 현장 사례: 찾아가는 진료와 마을 중심 돌봄의 가능성

강원도 인제군은 고령 인구 비율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전통적인 의료기관만으로는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에 따라 인제군은 고정된 병원이 아닌 이동형 진료팀을 중심으로 하는 순회 진료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기적으로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을 방문해 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을 점검하고, 복약 상담이나 기초 건강 교육을 함께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은 간호사, 물리치료사, 보건소 인력이 팀을 이루어 움직이며, 정기적인 방문을 통해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는다. 의료가 공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찾아가는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마을 주민들의 건강 불안이 크게 줄었다. 단순한 진료를 넘어 정서적 안정과 커뮤니티의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 인해 노년층의 이탈률이 줄어드는 성과도 함께 나타났다. 의료가 삶의 곁에 존재할 때, 마을은 비로소 생존 가능성을 회복하게 된다.

또 하나의 대안: 의료와 커뮤니티를 결합한 진안군의 실험

전북 진안군은 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소와 마을 커뮤니티 공간을 통합한 새로운 형태의 건강생활지원센터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을 단순한 복지 공간이 아닌 건강과 일상,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바꾸고, 여기에 보건소 간호사와 공중보건의를 파견해 운동 수업, 건강 강의, 심리 상담 등을 진행한다. 이 공간은 지역 주민이 스스로 운영에 참여하며, 단지 진료를 받는 장소가 아니라 공동의 삶을 조직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 마을에서는 건강 코디네이터라는 역할을 맡은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며, 자율적인 건강 모임을 만들고 지역 병원과의 원격 진료 시스템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지방 소멸이 단지 병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삶과 연결된 의료가 부족해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동체 안에서 건강을 지키는 힘을 만들어낼 때, 의료는 더 이상 외부에서 수입되는 서비스가 아니라 마을의 일부가 된다.

지방 소멸을 막는 의료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앞으로 지방에서 필요한 의료 시스템은 규모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유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병원을 새로 짓기보다, 이미 있는 공간에서 일상적인 건강 관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작은 변화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원격 진료는 이제 필수가 되었고, 이를 위해서는 고령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보건 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을 주민이 건강 관리의 주체가 되는 방식은 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열쇠다. 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면, 지방은 의료가 없어도 돌봄이 가능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생활권 내에서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기본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며, 언제든지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지방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의료는 더 많은 건물이나 장비가 아니라, 사람을 돌보는 연결 구조에서 시작된다.

맺으며,

지방 소멸 시대에 의료 시스템의 붕괴는 생존의 토대를 잃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의료는 반드시 병원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제군의 찾아가는 진료팀, 진안군의 건강 커뮤니티 공간처럼 주민 곁으로 다가오는 방식의 의료는 지방의 삶을 지키는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물리적 거리보다 관계적 거리를 좁히는 방식으로 의료를 재설계해야 한다. 마을 안에서 건강을 돌볼 수 있는 구조, 주민 스스로가 건강 주체가 되는 방식, 일상의 공간에서 의료가 작동하는 모델이야말로 지방 소멸을 늦출 수 있는 새로운 답이다. 지방이 다시 살아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든 안심하고 아플 수 있는 환경이다. 의료가 삶의 한복판으로 들어와야 지방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