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과 외국인 이주 – 다문화 마을이 살아남는 이유
지방 소멸이 급격히 진행되는 지역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문화 구성원이 삶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학교를 유지시키고, 농사일과 일손을 돕고, 마을을 지키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인 이주민이다. 처음에는 결혼이나 노동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 온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지역사회의 일부가 되었고, 더 나아가 마을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중심축이 되었다. 특히 고령화와 저출생이 극심한 지역에서는 외국인 이주민 없이는 지역 유지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도와줘야 할 존재’로만 인식하거나, 지역 유지의 일시적인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지방 소멸이 일상이 된 지금, 외국인 이주민은 단순한 대체 인력이 아니라 마을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가능성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 가능성을 사회 전체가 얼마나 빠르게 인식하고 제도화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 지방의 생존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지방 소멸 위기 속, 이주민은 이미 중심에 있다
현재 지방 소멸 위기 지역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마을 구성원의 다국적화다. 특히 농촌에서는 이미 외국인 노동자가 농번기의 핵심 인력이며, 농장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인 마을도 많고, 이들의 존재가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결혼이주여성은 이제 단순한 가정의 일원이 아니라 마을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아이를 낳고 마을 학교를 유지시키며, 지역 행사에 참여하고, 작은 상점을 운영하면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몇몇 면 단위 지역에서는 학교 전체 학생 중 과반이 다문화 가정 자녀인 경우도 있을 정도다. 만약 이주민이 없다면, 해당 마을은 행정적으로는 유지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기능을 상실한 곳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실은 지방 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 앞에서 외국인 이주민이 더 이상 주변인이 아니라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 소멸을 늦춘 다문화 마을의 실제 사례
경북 의성군의 한 농촌 마을은 결혼이주여성이 마을 주민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엔 가정의 일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마을회관 운영과 경로잔치 기획, 어린이 돌봄 등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마을은 2018년부터 마을 자체적으로 다문화 주민 자치회를 구성했고, 언어 통역부터 생활 정보 공유까지 이주민 간 협력을 체계화하면서 주민 간 신뢰를 쌓아왔다. 덕분에 귀농·귀촌하는 외부 청년들도 이 마을을 선호하게 되었고, 다문화와 귀촌의 조합이 새로운 시너지를 내고 있다. 전북 정읍의 한 마을에서는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농업 중심 공동체의 핵심 일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교회와 협력해 한국어 수업과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환경은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이 자립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로 작동하며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외국인 이주민이 마을 붕괴를 막는 존재에서, 마을을 재구성하는 주체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한 다문화 수용 구조의 필요성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지방의 현실은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며, 이제는 제도와 문화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외국인 이주민을 단지 노동력이나 인구 수 보완의 대상으로만 다뤄왔지만, 앞으로는 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어, 교육, 보건, 문화의 네 가지 영역에서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행정 문서를 다국어로 제공하고, 자녀 교육에서 이중언어 환경을 지원하며, 보건소에서 기본적인 건강 상담을 언어 장벽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적으로는 이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 문화의 일부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며, 단순히 ‘적응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자’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야 한다. 지방 소멸은 더 이상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다문화 시대에 걸맞은 마을 설계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공존의 마을 모델
앞으로의 지방은 단일문화 중심의 공간이 아니라 다문화 협력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주민과 지역주민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실제로 몇몇 지자체에서는 다문화 주민을 대상으로 한 마을 리더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역 자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고 있다. 또한 지역 농협이나 교육청, 주민자치센터와 연계해 다문화 리더십을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들도 확산 중이다. 이런 흐름은 일회성 이벤트나 복지 지원을 넘어서, 장기적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준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선 외국인을 받아들일 준비만 해서는 부족하며, 이들과 함께 마을을 운영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관계 기반이 필요하다. 공존의 마을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그 차이가 오히려 마을을 더욱 탄탄하게 지탱하는 힘이 되는 구조로 진화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지방 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문화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돌파될 수 있다.
맺으며,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해법은 더 이상 내부에서만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바깥에서 온 사람들,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이주민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그들은 이미 마을의 중요한 일원이 되었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들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구조와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다.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선 단지 사람을 유입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다문화 마을은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니라, 지방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