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 시대, 주민 주도의 마을 헌법 만들기 프로젝트
지방 소멸은 단순히 인구 감소와 경제 위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생활 방식과 공동체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인구가 줄고 외부와의 연결이 약해질수록 마을은 방향을 잃고, 각자의 생활만 이어가다 공동체가 해체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주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마을 운영의 원칙과 규칙을 만드는 ‘마을 헌법’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마을 헌법은 단순한 조례나 규정이 아니라,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명문화한 약속이다. 이는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과정이다.
지방 소멸과 마을 헌법의 필요성
지방 소멸이 심화되면 행정 서비스가 축소되고 외부 지원이 줄어든다. 이때 마을 내부의 자율적인 운영 능력이 생존의 열쇠가 된다. 그러나 기존 농촌이나 어촌 마을에는 현대적 의미의 자치 규범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오랜 관습이 유지되던 시기에는 굳이 문서로 규칙을 정하지 않아도 생활이 이어졌지만, 인구 구조가 변하고 새로운 주민이 유입되면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예를 들어, 공유지 사용 방식, 축제 운영, 마을 재정 집행과 같은 사안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동체가 분열될 수 있다. 마을 헌법은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고, 모든 주민이 동일한 기준과 절차를 공유하도록 만든다. 이는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마을이 자율성을 확보하고 협력 문화를 강화하는 기초 장치가 된다.
지방 소멸 대응형 마을 헌법의 구성 요소
마을 헌법은 단순히 ‘규칙 모음’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와 방향성을 담아야 한다. 먼저, 마을의 비전과 미션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속 가능한 농업과 청년 정착을 지원하는 마을’처럼 공동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둘째, 의사 결정 구조를 규정해야 한다. 회의를 통한 합의, 투표 방식, 대표 선출 절차 등을 명문화하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재정 운영 원칙을 담아야 한다. 마을 소득의 사용처, 예산 편성 방식, 감사 절차를 명시함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갈등 해결 절차를 포함해야 한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재인이나 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는 과정을 헌법에 규정하면, 감정적 대립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지방 소멸 시대의 마을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기반이 된다.
지방 소멸 지역에서의 마을 헌법 실행 사례와 한계
일부 지방 소멸 위기 마을은 이미 마을 헌법을 도입해 변화를 이끌어냈다. 전남의 한 어촌 마을은 공유 어장을 이용하는 규칙과 어획량 관리 기준을 헌법에 명시해 자원 고갈을 막았고, 주민 간의 불신도 줄였다. 경북의 한 산촌 마을은 귀농·귀촌 인구가 늘면서 생활 방식 차이로 갈등이 발생하자, 마을 헌법에 ‘생활 소음 기준’과 ‘공동 행사의 참여 의무’를 규정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헌법이 만들어져도 주민 참여가 저조하면 형식적인 문서에 그칠 수 있으며, 외부 변화에 맞춰 내용을 주기적으로 개정하지 않으면 현실과 괴리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초기 단계에서는 의견 충돌로 인해 헌법 제정 과정 자체가 길어질 수 있다. 이런 한계는 실행력과 주민 참여를 동시에 높이는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지방 소멸 시대 마을 헌법의 미래 전략
앞으로 마을 헌법이 지방 소멸 대응에서 효과를 발휘하려면 세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제정 과정에 최대한 많은 주민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공청회, 워크숍, 소규모 회의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 헌법에 대한 신뢰와 애착이 생긴다. 둘째, 법률 전문가와 지역 활동가가 함께 참여해 현실성과 법적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셋째, 헌법을 고정된 문서로 보지 않고, 시대 변화와 마을 상황에 맞춰 주기적으로 개정하는 살아있는 규범으로 운영해야 한다. 나아가, 다른 마을과의 연계도 중요하다. 여러 마을이 헌법 제정 경험을 공유하면 더 완성도 높은 자치 규범이 탄생하고, 이를 통해 지방 소멸 대응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마을 헌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마을을 되살리는 공동의 약속이자 미래 설계도다.
맺으며,
지방 소멸 시대의 마을 헌법은 공동체의 생존 전략이자 자치 역량의 상징이다. 주민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지키는 과정에서 협력과 신뢰가 형성된다. 헌법은 단순히 문서가 아니라, 마을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사라져가는 마을을 지키는 힘은 외부 지원이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낸 이 약속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