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그냥 마을’이어도 괜찮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는 지금, 더 이상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라는 이미지만으로는 사람을 부르고 머물게 할 수 없다. 전국 곳곳에서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심화되며, 빈집이 늘어나는 마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마을이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가치를 외부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마을도 더 이상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장소로 선택받기 위한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 시대다. 마을 브랜딩이란 단순히 로고를 만들고 예쁜 간판을 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을만의 삶의 방식, 기억, 사람, 물건, 이야기를 일관된 메시지와 시각으로 외부에 전파하는 전략이다.
이 글에서는 지방 소멸을 늦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을 브랜딩의 핵심 원리와 사례들,
그리고 브랜딩을 통해 마을이 다시 선택받는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지방 소멸 지역에서 브랜딩이 필요한 진짜 이유
지방 소멸 위기 마을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이 마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는 점이다. 특산물은 다른 마을에도 있고, 풍경은 더 나은 곳도 많다. 결국 선택은 ‘이 마을만의 스토리’와 ‘차별화된 감성’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방 소멸 마을은① 마을 정체성이 외부에 전달되지 않고, ② 홍보물은 이벤트 중심으로만 구성되며, ③ 주민들도 자신들의 마을이 왜 특별한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지원금과 정책을 투입해도 지속 가능한 지역 생존 전략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브랜딩은 마을이 외부에 “우리는 누구인가”를 말하는 방식이며, 사람이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방문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통해 소멸의 흐름을 전환하는 힘을 갖는다. 이제는 마을도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하지 않으면 지도에서 지워지는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지방 소멸을 막는 마을 브랜딩 사례①: 전남 고흥 녹동 마을
전남 고흥의 녹동 마을은 한때 어업 침체와 고령화로 청년층이 거의 떠나버린 지방 소멸 위험 지역이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지역 청년과 기획자들이 힘을 모아 ‘느린 섬 일상’이라는 마을 브랜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 홍보가 아니라 마을의 느림을 콘텐츠로 해석하고, 주민의 일상(김치 담그기, 갯벌 걷기 등)을 체험 상품화하고, 마을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로컬 굿즈 제작과 SNS 운영을 병행했다. 결과적으로 녹동은 ‘느리게 살아보고 싶은 마을’이라는 정체성을 확보했고, 외지 청년 창업자와 여행자 유입이 증가했다. 현재는 지역 기반의 소규모 숙박업과 체험 클래스가 늘어나 소멸 위기 마을에서 정착 유도형 브랜드 마을로 전환되고 있다. 이 사례는 브랜딩이 마을 전체의 인식 전환과 경제 구조 재설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방 소멸을 막는 마을 브랜딩 사례②: 강원 영월 ‘기억의 마을’ 프로젝트
강원 영월군의 한 산골 마을은 지방 소멸 위험 지수 상위권에 오를 만큼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공동체 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마을은 2021년부터 ‘기억의 마을’이라는 정체성으로 브랜딩을 시작했다. 핵심은 사라져가는 기억, 물건, 이야기, 풍경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주민들이 쓰던 낡은 도구와 가족 사진을 전시하고, 과거 마을 방송을 재구성한 ‘로컬 라디오’를 송출하며, 외지 예술가들이 마을의 풍경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결국 이 마을은 ‘아름다운 미래’가 아니라 ‘소중한 과거’를 보러 가는 마을이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이후 ‘기억 여행자’라는 콘셉트로 SNS 채널을 개설하고 전국적 관심을 받았으며, 실제 이 마을을 소재로 한 출판, 영상 콘텐츠도 제작되었다. 이 사례는 소멸 위기마을이 자신의 소멸을 콘텐츠화하며 되살아나는 전환 모델로서 주목할 만하다.
지방 소멸을 늦추는 마을 브랜딩 전략의 핵심 조건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한 마을 브랜딩이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① 정체성 중심 설계: 특산물이나 유명인 대신, 그 마을만의 감성·생활·기억·풍경 등 내부에서 나오는 자산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설계해야 한다.
② 주민 참여형 브랜딩: 전문가가 아닌 주민이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와 콘텐츠 생산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성과 공동체 자부심이 동시에 확보된다.
③ 다채널 확산 구조: 오프라인 간판과 로고에만 머무르지 않고, SNS, 유튜브, 뉴스레터, 굿즈, 전시 등 다양한 채널로 브랜드를 확장해야 한다.
④ 브랜드와 경제 연결성: 브랜드가 단지 이미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 농산물, 체험, 숙박, 공간 운영 등 실제 경제 활동과 연계돼야 정착을 유도하는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마을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머물고 싶은 의미’를 가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맺으며,
지방 소멸은 사람이 떠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마을이 다시 선택되지 않는 구조가 더 큰 문제다. 브랜딩은 그 마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만드는 일이며, 그 메시지에 공감한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머물고, 살아가는 과정이 바로 지방 소멸을 늦추는 실질적인 힘이 된다.
지금 필요한 건 행정 주도의 개발이 아니라, 이야기와 감성이 살아 숨 쉬는 마을 브랜드 설계다. 브랜드가 살아야 마을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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