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은 단순히 인구가 줄고 집이 비는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기회의 단절이다. 그 기회의 단절은 최근, 디지털 격차라는 이름으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생활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학교 수업도 온라인으로, 은행 업무도 스마트폰으로, 사업 운영도 디지털 마케팅으로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지방, 특히 소멸 위기 지역은 이러한 흐름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다. 초고속 인터넷이 닿지 않는 마을, 공공 와이파이조차 연결이 불안정한 버스 정류장, 디지털 기기를 쓸 줄 모르는 고령자 비율이 높은 농촌은 디지털 시대의 기본적인 생존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격차가 지방 소멸을 어떻게 가속화시키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프라 재정비 및 디지털 생활권 확장의 전략을 살펴본다.
지방 소멸 지역의 디지털 격차 실태와 구조적 문제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ICT 강국이지만, 이 성과는 도시 중심의 성장이 만들어낸 착시일 수 있다. 2024년 기준, 일부 산간 지역이나 도서 지역은 LTE·5G 접속률이 전국 평균의 60~70% 수준에 불과하고, 특히 고령자가 많은 읍·면 단위는 디지털 기기 접근성과 활용 능력 모두 낮은 상황이다. 또한 교육 인프라나 행정 서비스가 점점 비대면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기초적인 인터넷 환경이 없는 지역은 행정 사각지대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다.
지방 소멸 지역에서는 ① 온라인 수업 접근 불가능, ② 원격 진료 이용 불가, ③ 온라인 민원 처리 지연,④ 디지털 금융 서비스 이용 불능 등 기본 생활 서비스조차 누릴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기술 문제를 넘어서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생존 조건을 차단하는 생존의 벽이 된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지방 소멸은 더욱 빠르게, 더 넓게 확산될 수밖에 없다.
지방 소멸을 가속화한 디지털 인프라 배제의 실제 사례
경북 A군의 한 산간 마을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교육이 확대되면서 초등학교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에 참여할 수 없어 차량으로 30분 거리의 읍내 학교까지 매일 이동해야 했다. 이로 인해 해당 마을의 학령기 아동을 둔 가정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고, 결국 해당 마을 초등학교는 폐교됐다. 또한 전남 B면 지역의 경우, 60대 이상 주민이 전체의 85%를 차지하지만 인터넷뱅킹, 모바일 인증서 등 기초 디지털 금융 접근성이 낮아, 은행 창구 폐쇄 이후 금융 고립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단지 ‘인터넷이 느려서 불편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교육·금융·의료 등 모든 사회 시스템에서의 배제를 의미하며, 결국 지방 소멸을 현실화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디지털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은 아예 생활권 자체가 유지되지 않게 되고, 사람들이 떠나도 돌아오지 않는 공간으로 남게 된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디지털 생활권 확장 전략
디지털 격차는 기술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단순히 통신망을 깔고 태블릿을 나눠준다고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①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의 지역 맞춤형 구축: 단순 커버리지가 아닌 실제 속도·안정성·요금 문제까지 해결하는 지역 최적화 설계가 필요하다.
② 디지털 교육의 생활 밀착화: 농촌 어르신, 중장년층, 청년 귀촌자 등을 대상으로 소규모 마을회관·이장단 중심의 생활형 디지털 교육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③ 공공 디지털 서비스의 현장 연계 강화: 모바일 민원처리나 원격 진료 등은 마을 내 디지털 중계자(디지털 소사) 시스템을 통해 지역 주민이 기술 장벽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④ 디지털 기반 마을공동체 모델 구축: 와이파이 기반 커뮤니티 공간, 공동 온라인 장터, 영상회의 가능한 마을 회의실 등이 지역 내 소통과 협업의 디지털 거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디지털 격차를 줄이면 비로소 지방은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공간으로 회복될 수 있다.
지방 소멸을 늦추는 디지털 전환의 핵심 조건
디지털 전환이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작동하려면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서 지역 맞춤형 실행력과 지속 가능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핵심 조건은 다음과 같다.
① 기초 인프라 확보: 5G가 아닌 안정적인 유선망 확보부터 시작해야 한다.
② 인간 중심 설계: 어르신, 장애인, 귀촌자 등 디지털 약자를 고려한 UX/UI와 실제 행동 기반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③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 교육이나 기기 제공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역 자체 인력 양성과 순환 구조로 이어져야 한다.
④ 지방 특화 서비스 개발: 농업 정보, 날씨, 건강, 마을 회계 등 실제로 그 지역에서 필요한 디지털 서비스가 설계돼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면, 지방은 도시 못지않은 디지털 생활권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사람이 떠나는 구조에서 머무는 환경으로 전환될 수 있다. 결국 지방 소멸을 늦추는 디지털 전략이란, 기술을 넘어 삶을 연결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맺으며,
지방 소멸의 그림자 속에서 디지털 격차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터넷이 느린 마을, 온라인 민원이 불가능한 동네, 모바일 뱅킹조차 접근할 수 없는 어르신의 삶 속에서 생존의 기회는 점점 좁아진다. 이제는 지방도 디지털로 살아야 한다. 초고속 인터넷만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디지털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는 역량과 전략이 지방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디지털 조건”이다. 끊어진 연결을 다시 잇는 것, 그것이 지방의 생존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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