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이 진행 중인 마을을 들여다보면, 사라진 것은 인구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은 서로를 돌보는 구조, 즉 복지 시스템이다. 고령화가 극심한 지역일수록 병원이나 보건소는 멀어지고, 이동은 불편해지며, 긴급한 상황에도 대응이 늦어진다. 가족이 해체되고 이웃 간의 연결이 느슨해진 상태에서 노인과 장애인, 아동 등 취약계층은 홀로 고립되기 쉬운 구조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곧 마을 전체의 기능 상실로 이어진다.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프라나 경제만큼이나 복지의 재설계가 중요하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는 주민이 중심이 되는 돌봄 시스템으로, 지방 소멸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복지를 공공의 몫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나누는 구조로 재편할 때, 마을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삶의 안전망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지방 소멸 지역의 돌봄 붕괴 현실
지방에서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를 넘는 곳이 많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위한 복지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읍·면 단위 보건소는 상시 운영이 어렵고, 의료기관은 대부분 도시로 집중되어 있다.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도 부족하고, 그마저도 이동에 큰 제약을 받는다. 집에 혼자 남겨진 노인들은 응급 상황에 취약하며, 일상적인 건강 체크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이 많다. 지역 내 돌봄 공백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방 소멸의 가속화는 단지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서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복지가 붕괴되면 마을은 더 이상 삶의 터전이 될 수 없고, 결국 사람들은 마지막 희망마저 잃고 떠나게 된다. 이 현실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복지를 마을의 중심으로 두는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 소멸을 늦춘 커뮤니티 케어 실험 사례
전북 순창의 한 농촌 마을은 지역 보건소, 자원봉사센터, 마을 회관이 협력하여 ‘마을 중심 커뮤니티 케어’를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공중보건의와 간호사가 마을을 순회하며 정기적인 건강 체크를 하고, 마을 회관에서는 주 2회 건강 운동 프로그램과 심리 상담이 이루어진다. 주민들은 단순히 수혜자가 아니라, ‘건강 코디네이터’로서 활동하며 서로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본다. 경북 영양의 한 마을에서는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공동 주거 공간과 지역 식당을 결합한 모델이 운영되고 있다. 각 세대는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도, 공동 식사를 통해 정서적 고립을 줄이고 있다. 이처럼 커뮤니티 케어는 의료나 돌봄이 특정 기관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을 전체가 유기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지방 소멸을 늦추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으며, 주민 간 신뢰와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지방 소멸 대응형 커뮤니티 케어의 설계 요소
지방에서 커뮤니티 케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설계 요소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접근성이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도 이용할 수 있는 이동형 진료 서비스, 방문 간호, 순회 상담 등 물리적 거리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수다. 두 번째는 주민 참여 기반이다. 마을 안에서 복지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인력은 외부 전문가보다 지역 주민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과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공간의 통합이다. 마을 회관, 노인정, 보건소 등을 복합화해 단순한 시설의 나열이 아니라, 생활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네 번째는 정보 연계다. 건강 정보, 응급 상황 대응, 복지 자원 등의 정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동할 때, 커뮤니티 케어는 단지 복지 서비스를 넘어 지방의 생존을 지탱하는 구조로 확장될 수 있다.
지방 소멸을 멈추는 ‘돌봄 중심 마을’의 가능성
커뮤니티 케어는 단지 고령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 마을 전체가 서로 돌보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구조로 전환되는 방식이며, 세대와 계층을 넘어서는 공동체 회복의 전략이다. 경기도 양평의 한 마을에서는 육아 부모, 고령자, 장애인, 1인 가구가 함께 참여하는 마을 돌봄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요일을 정해 각자에게 필요한 생활 지원을 돌려가며 맡고, 정기적인 공동 식사와 행사를 통해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방식은 정부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도 마을 안에서 자생적으로 돌봄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제나 일자리보다 먼저, 사람이 지켜지는 구조가 먼저여야 한다. 복지와 커뮤니티가 결합된 마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존 모델이며, 이러한 돌봄 중심 마을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지방 소멸의 흐름을 멈추는 실질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맺으며,
지방 소멸을 늦추기 위한 해법은 삶을 지탱하는 기본 구조를 복원하는 데 있다. 그 핵심이 바로 복지, 특히 주민이 중심이 되는 커뮤니티 케어다. 단순한 행정 서비스나 의료 지원을 넘어서, 마을 전체가 돌봄의 주체가 되는 구조가 자리 잡을 때 지방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커뮤니티 케어는 약자를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며, 돌봄이 중심이 되는 마을은 곧 소멸을 막는 마을이 된다.
'지방 소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방 소멸을 막는 주민자치의 새로운 모델 (0) | 2025.08.03 |
---|---|
지방 소멸 시대의 ‘먹거리 자립’ 전략: 로컬 푸드 시스템 구축 (0) | 2025.08.02 |
지방 소멸 대응형 ‘슬로우 라이프’ 마을의 가능성 (0) | 2025.08.01 |
지방 소멸 시대의 공유 경제 실험: 마을의 자원을 나누는 방식 (2) | 2025.07.31 |
지방 소멸과 외국인 이주 – 다문화 마을이 살아남는 이유 (0) | 2025.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