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되는 지방과 살아남는 지방,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대한민국 곳곳의 시골 마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뉴스에서는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이 먼 미래의 일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시군구는 무려 절반을 넘어섰으며, 10년 이내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마을도 계속 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마을은 사라지고, 어떤 마을은 살아남을까? 이 글에서는 단순히 인구 감소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남고 있는 마을들의 공통적인 생존 조건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정책보다, 지원금보다 중요한 ‘구조와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방소멸 피하는 첫 번째 조건 : ‘청년이 머무는 구조’가 있는가?
시골 마을의 생존 여부는 청년층의 존재 유무에 달려 있다. 단순히 한두 명의 귀촌 청년이 정착했다고 해서 마을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이유가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농업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한계가 있고, 다양한 생계 수단이 함께 주어져야만 정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경북 영덕의 한 마을은 청년 귀촌자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해 수익을 공유하고, 자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로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농산물 외에도 로컬 푸드 카페, 마을 가이드 투어 같은 부업 모델을 만들어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일부 지역은 귀촌을 유도하는 데만 집중해 실질적인 ‘정착 인프라’ 없이 젊은층을 유입시키고, 몇 년 안에 대부분 이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청년이 머무는 구조가 없다면, 아무리 인구를 유입해도 지방은 다시 텅 비게 된다. 이는 마을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변수다.
지방소멸 피하는 두 번째 조건: 외부와 연결된 ‘콘텐츠’가 있는가?
외부와의 연결은 생존 마을의 또 다른 핵심 조건이다. 지금까지 많은 마을들이 고립된 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생존하려 했지만, 그런 마을일수록 빠르게 인구가 줄어들었다. 반대로 살아남는 마을은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 가치를 콘텐츠화해 발신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남 곡성의 한 마을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마을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지역 문화학교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외지 청년과 아티스트를 유입시켰다. SNS를 통해 마을 일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브랜딩하고, 소규모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체험형 수익 모델도 운영한다. 이처럼 시골 마을이 단지 ‘사는 곳’이 아닌, ‘경험하고 소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면 외부 자원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콘텐츠가 없는 마을은 아무리 좋은 경치와 인프라를 갖췄더라도 주목받지 못한다. 생존한 마을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브랜드로 만들고, 그것을 통해 외부와의 관계망을 확장한다.
지방소멸 피하는 세 번째 조건: 주민 공동체의 수용성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 마을은 흔들린다. 문제는 그 흔들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많은 시골 마을은 외지인을 반기지 않으며,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생존하는 마을은 다르다. 이들은 변화에 유연하며, 외부의 힘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추고 있다.
경남 하동의 한 마을은 외지인이 마을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관을 수정했고, 새로운 주민들이 공동체 행사와 결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결과, 귀촌자는 단순한 거주자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오히려 마을 발전을 이끄는 주체가 되었다.
반면에 변화에 저항하고 폐쇄적인 문화를 고수한 마을들은 청년층 유입은커녕 기존 주민들마저 이탈하게 된다. 생존하는 마을은 다양성을 포용하며, ‘함께 살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소멸을 막는 유일한 공동체적 힘이다.
지방소멸 피하는 네 번째 조건: 지속 가능한 인프라와 행정의 역할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을이 되려면, 가장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전기와 수도, 교통은 물론이고, 인터넷 접속 환경과 교육, 보건 서비스까지 포함된다. 단지 예쁜 자연환경만으로는 누구도 오래 살지 않는다.
강원 정선군의 한 마을은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을 활용해 빠른 통신망을 구축했고, 이를 통해 재택근무자와 창작 활동가들의 유입을 이끌었다. 또한 폐교를 리모델링해 교육 공간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한 소규모 방과후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공공 인프라의 선투자가 이뤄질 때,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찾게 된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요소는 ‘지속적이고 탄력적인 행정의 개입’이다. 일회성 지원금으로는 마을이 살아날 수 없다. 오히려 매년 주민과 함께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그 실행에 필요한 예산을 분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행정은 조력자로서 기능하며, 마을은 주체로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 구조가 갖춰졌을 때, 시골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
맺으며,
지방 소멸의 시대 속에서도 살아남는 마을은 분명 존재한다. 그 마을들은 우연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구조’, ‘소통 가능한 콘텐츠’, ‘포용적인 공동체’, 그리고 ‘기초 인프라와 행정적 지원’을 갖춘 경우다. 대한민국의 시골이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닌, 미래를 위한 실험실로 기능하기 위해선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춘 마을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시골의 생존은 대한민국의 균형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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