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인구 감소와 마을의 소멸 위기는 결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도 이미 같은 문제를 수십 년 전부터 겪고 있으며, 그에 대한 다양한 대응 전략과 정책 실험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특히 일본과 프랑스는 대표적인 지방 소멸 위기 국가로 꼽히며, 한국이 참고할 만한 선행 사례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와 청년 유출로 인해 20년 이상 시골 마을 붕괴를 겪었고, 프랑스는 파리 중심의 경제 집중이 심화되며 지방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두 나라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지역 소멸에 대응했으며, 그 성과와 한계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일본과 프랑스의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지방을 되살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실패와 성공은 어디에서 갈리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일본의 지방 소멸 대책안 : ‘지방 창생 전략’과 지역 순환 경제 실험
일본은 지방 소멸 위기에 가장 먼저 직면한 국가 중 하나다. 일본 총무성은 2014년부터 ‘지방 창생(地方創生)’이라는 국가 전략을 통해 소멸 위기 지자체를 지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인 성장 모델을 설계할 수 있도록 재정과 권한을 이양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는 오이타현 유후인이다. 유후인은 단순한 온천 마을이었지만, 지역 주민들이 직접 관광 콘텐츠를 기획하고, 소규모 예술 축제와 연계한 체류형 여행 문화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자립시켰다.
또한 도쿠시마현 가미야마 마을은 디지털 노마드를 유치하기 위해 광섬유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고, 공공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유 사무실을 조성했다. 이곳엔 도쿄 출신의 IT 스타트업들이 실제로 사무소를 열고, 원격 근무가 가능한 구조 속에서 지방과 도심을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생태계를 형성했다.
핵심은 지역이 자율적으로 브랜딩과 산업 재설계를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에서는 정책을 흡수하지 못하거나, 형식적인 예산 소진에 그친 경우도 많아 ‘실행력’의 격차가 성공 여부를 갈랐다.
프랑스의 지방 소멸 대책안 : ‘중소도시 회복 프로그램’과 문화 중심 재생 전략
프랑스는 지방 소멸보다는 ‘지방 기능 약화’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펼쳤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중소도시의 공공 서비스와 경제 기반이 붕괴되자, 프랑스 정부는 2018년부터 ‘Action Cœur de Ville’(도심 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중소도시를 다시 거주 가능한 곳으로 만드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은 단순한 건물 재정비나 상업지역 확장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문화적 자산을 경제 자원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르망(Le Mans)시는 중세시대 구시가지의 건축을 보존하면서도 청년 창작자에게 임대료를 면제해주는 아트존을 만들어, 창작 중심의 관광 도시로 탈바꿈했다.
또한 프랑스 남부의 알비(Albi)는 농촌 지역이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슬로우 시티’ 콘셉트를 개발했고, 외지인 이주자에게 농업 관련 창업자금을 지원하며 고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인구를 유입하고 있다.
프랑스의 전략은 도시와 시골의 구분을 없애고, ‘살아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는 특징이 있다. 단순히 거주를 위한 인프라가 아닌, 문화적 라이프스타일이 결합된 공간을 만드는 접근 방식은 한국 지방정책과는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일본과 프랑스의 지방 소멸 대책안에서의 공통점 : 자율성과 브랜딩의 힘
일본과 프랑스는 지역 상황과 행정 구조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성공한 지역은 자율성과 브랜딩 역량이 강했다. 유후인과 르망, 가미야마와 알비 모두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설계한 정책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 지역 자체가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지역의 고유 가치를 브랜드화한 사례다.
예를 들어 유후인은 지역 상인과 주민들이 ‘유후인답다’는 브랜드 철학을 지키며, 대형 체인이나 프랜차이즈 입점을 거부했다. 이 덕분에 지역 고유의 색깔이 유지되었고, 오히려 도시보다 더 특별한 여행지로 주목받았다.
프랑스 르망 역시 역사성과 창작 공간이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면서, 단순히 낙후된 도시를 수리하는 수준을 넘어 ‘문화적 목적지’로서의 가치를 확보했다.
반면 자율성과 브랜딩 없이 중앙 지침만 따르거나 일회성 프로젝트만 반복한 지자체는 대부분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지역 피로감만 커졌다.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선 외부 정책이 아닌 내부 서사의 힘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 지방 소멸 대책 실행 주체의 변화와 구조 개편
한국은 지방 소멸 문제에 대해 다수의 정책을 이미 실행 중이지만, 중앙 주도형 틀에 여전히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과 프랑스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마을과 지자체가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실행 주체’로 전환돼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의 많은 지역은 예산과 지원금은 많지만, 그것을 활용해 독자적인 방향성을 세우는 역량은 부족하다. 지역에 맞는 정체성, 산업,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할 수 있는 ‘로컬 전략가’의 부재가 지속적인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은 재설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각 지자체에 독립적인 로컬 전략 사무국을 설치하고, 정책 집행 주체를 공무원이 아닌 주민 거버넌스로 전환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중앙은 일괄적인 예산 배분이 아니라, 성과 기반 + 자율 기획 지원 방식으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향후 10년 안에 한국의 지방은 숫자상으로만 존재하는 ‘행정 구역’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일본과 프랑스의 사례는 지방이 어떻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실이자 교과서인 셈이다.
맺으며,
지방 소멸 문제는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장기적 과제다. 일본과 프랑스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지역의 위기를 극복하려 했고, 몇몇 지역에서는 실제 성과도 확인되었다. 성공적인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지역 주도의 브랜딩, 자율성 기반 기획, 문화와 경제의 통합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역시 더는 중앙의 지침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방이 주체가 되는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해외 사례는 답안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방향성과 구조의 재설계가 왜 필요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실행하는 방식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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