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이 가속화되면서 단지 사람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을 이어주던 길조차 사라지고 있다. 지방 곳곳에서 농어촌버스 노선은 매년 축소되고, 기차역은 폐지되며, 심지어 마을과 읍내를 잇는 유일한 도로마저 포장되지 않는 곳도 늘고 있다. 교통망의 축소는 단지 이동의 불편을 넘어서, 의료·교육·상업 서비스로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고립을 뜻한다.
이제 일부 마을은 병원에 가기 위해 2시간 넘게 걸리는 산길을 타야 하고, 중학생이 통학을 포기하고 타지로 전학을 가기도 한다. 지방 소멸의 실질적 촉진제는 바로 교통망의 단절이다. 이 글에서는 교통 축소가 지방 소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교통이 단절된 마을이 어떻게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지방 소멸 마을의 교통 현실: 단절된 일상
지방 소멸이 진행 중인 마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외부와 연결되는 교통망이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강원도 A군의 한 산촌 마을은 2024년 버스 노선이 완전히 폐지됐다. 이전에는 하루에 2번 읍내까지 운행되던 버스가 있었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운수업체가 철수했고, 고령의 주민들은 병원, 마트, 관공서 방문조차 마을 봉고차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겨울철 폭설이 오면 아예 마을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다.
전북 B군의 마을은 학교가 읍내에 있는데, 학생이 2명밖에 없다는 이유로 스쿨버스가 중단되었다. 결국 학부모가 통학을 위해 이사를 결심하면서, 마을에는 어린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이처럼 교통망의 축소는 단지 불편함을 넘어 사람의 ‘존재 조건’을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지방 소멸의 구조를 더욱 가속화한다.
지방 소멸을 가속화시키는 교통 축소의 구조적 원인
교통망이 축소되는 것은 단지 버스회사가 수익이 안 나서 떠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지방 재정의 한계, 인구 감소 예측 시스템의 부정적 순환, 그리고 ‘서비스는 수요가 있는 곳에만 제공한다’는 시장 논리의 일방적 적용이 있다. 지자체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노선 유지보다는 도심 정비, 관광 인프라 개발 등 외형적인 사업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 결과 교통은 매번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특히 국비 보조가 축소된 지역교통 지원사업은 버스 한 대를 유지하는 데도 막대한 행정 절차와 자부담이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교통이 단절되면 그 지역의 인구는 더 빠르게 줄고, 그 인구감소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시 교통망을 줄이는
‘악순환의 정책 피드백 구조’가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지방 소멸 마을은 더 이상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교통 사각지대에 고립되게 된다.
교통이 사라진 지방 소멸 마을의 대응 사례들
그러나 이처럼 고립된 상황에서도 자체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마을들이 있다. 전남 곡성의 한 마을은 마을 주민이 직접 전기차 기반 마을 순환차량 운영조합을 설립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읍내를 왕복하는 셔틀을 자율 운영 중이다. 이용자는 요금을 내고 예약을 통해 탑승하며, 운전은 마을 청년이 맡고 있다.
또한 충남 서천에서는 ‘찾아가는 생활교통버스’를 주민 협의체 주도로 기획해, 주 3일 지정 시간에 생활 필수 동선을 따라 운행되도록 구성했다. 이들 모델은 대형 교통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했던 초소형-초맞춤형 이동 서비스를 통해 실제 주민의 생활과 맞닿은 이동권을 회복하고 있다.
교통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을이 생존하려면 주민 중심의 교통 자치 모델이 필요하며,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지방 소멸 대응 전략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지방 소멸을 늦추기 위한 교통 정책의 전환 방향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교통 정책은 기존처럼 수요-공급 논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통을 '사회적 생존 기반'으로 재정의하는 발상의 전환이다.
첫째, 일정 인구 이하 마을에도 기본 교통권을 헌법적 권리 수준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지역 맞춤형 교통 솔루션 설계 지원과 예산 연계가 가능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기반 마을 이동 플랫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로컬 모빌리티 플랫폼’을 통해 주민 예약, 경로 최적화, 지역 내 택시 연계 등을 자동화하면 고령자와 청년 모두가 쓸 수 있는 스마트 이동권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지방 소멸을 늦추기 위해서는 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교통은 단순한 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존속 여부를 결정짓는 생존 인프라다. 이동권이 없는 마을에는 사람이 머물 수 없다. 그리고 머무는 사람이 없는 마을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맺으며,
지방 소멸은 교통망의 축소와 맞물려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불편함이 아니라 삶의 단절이며, 고립의 시작이다. 전통적인 대중교통 시스템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주민 주도형, 초맞춤형 교통 솔루션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방 소멸을 늦추기 위한 교통 정책은 이제 '도로 건설'이 아니라 ‘이동의 권리 보장’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마을이 다시 살아나려면, 먼저 길이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도로가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교통의 철학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방 소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방 소멸 시대, 귀촌보다 어려운 ‘정착’의 조건 (0) | 2025.07.06 |
---|---|
지방 소멸 방지를 위한 지역 농업의 리브랜딩 사례 (0) | 2025.07.06 |
지방 소멸 속에서 살아남는 마을학교의 교육 실험 (0) | 2025.07.04 |
지방 소멸과 로컬 정치: 사라지는 마을의 의사결정 구조 (0) | 2025.07.04 |
지방 소멸과 문화예술: 지역 생존을 이끄는 창작 공동체의 힘 (0) | 2025.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