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귀촌 유도 정책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과 도시민을 대상으로 각종 이주 지원, 창업 자금, 주택 제공 등을 통해 지방 유입을 꾀하고 있다. 그런데 통계를 보면 귀촌 인구는 분명 늘고 있는데, 정착률은 낮고, 실제 마을은 여전히 비어 있는 곳이 많다.
왜일까? 그 핵심은 바로 ‘정착’이다. 지방 소멸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없는 구조’에 있다는 데 있다. 한 번 떠난 이가 다시 돌아오고, 낯선 이가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단순한 주택과 일자리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귀촌 이후의 정착이 왜 어려운지, 그리고 지방 소멸을 늦추기 위한 ‘진짜 정착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본다.
지방 소멸 지역의 정착 실패 원인: 시스템보다 삶의 구조 문제
많은 귀촌자들은 이주 초기에는 만족도가 높지만, 1~2년 안에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첫째, 공적 시스템의 단절. 행정, 교육, 의료, 금융 등 일상 생활을 위한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거나,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도시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이주민은 기본적인 생활 유지에도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둘째, 사회적 고립. 마을 공동체에 진입하기 어렵고, 기존 주민과의 거리감, 정보 비대칭, 폐쇄적 문화 등이 정착 의지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셋째, 일자리 구조의 한계. 자영업 또는 농업 창업 지원은 있지만, 실제 수익 창출까지의 간극이 커 장기 유지가 어렵다.
결국 정착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전체 구조와 흐름이 지역에 녹아드는 과정이다. 지방 소멸 지역에서는 그 구조 자체가 부재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단기적 귀촌은 가능하지만, 정착은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방 소멸을 늦추는 정착형 마을의 특징
그렇다면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실제로 ‘정착’을 이루고 있는 마을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로 전남 장흥의 한 마을은 귀촌자가 많지만 5년 이상 장기 거주자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3배 이상 높다.
이 마을은 단순한 주택 공급이 아닌 ① 마을 단위 코리빙 형태의 주거 설계, ② 지역 기반의 소규모 창업 생태계, ③ 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협의체 운영이라는 3가지 요소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경북 의성에서는 ‘이주민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외부에서 온 청년들이 지역 내 공공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처럼 정착형 마을은 단순한 기반시설이나 행정 지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주거, 일, 관계, 자율성이라는 4가지 축이 균형 있게 제공되어야만 지방 소멸의 흐름을 멈추고, 사람을 오래 머물게 만들 수 있다.
지방 소멸 시대에 필요한 정착 정책의 방향성
현재의 귀촌 정책은 이주 유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하지만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정착 유지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1회성 지원이 아닌 장기적 정착 설계 기반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귀촌 1년차’ 지원뿐 아니라, 2~5년차 단계별 소득/주거/교육/돌봄 연계 플랜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이주민과 지역민 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로컬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 이 조직은 문화 차이 해소, 행정 안내, 공동체 연결 등을 지원해 정착 초기의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 자율성과 실험 가능성을 보장하는 정책 구조가 필요하다. 마을마다 조건과 문화를 고려해 정형화된 귀촌 정책이 아닌 ‘지역 맞춤형 정착 모델’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 소멸은 단순히 사람을 더 데려오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이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설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마을이 가능해진다.
지방 소멸을 늦추는 정착의 본질: 선택받는 마을, 살아지는 구조
결국 지방 소멸 시대에 중요한 건 ‘사람을 부르는 마을’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마을이다. 즉, 마을이 정주자에게 선택받으려면 기반시설보다 먼저 삶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사람이 남는 마을은 결국 ① 살아갈 이유가 있고, ② 함께할 사람이 있고, ③ 성장할 여지가 있는 공간이다. 이 3가지가 없는 마을은 아무리 예쁜 자연과 좋은 조건을 갖춰도 결국 ‘귀촌체험 마을’로 끝나고 만다. 지방 소멸을 늦추는 진짜 조건은 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즉, 사람이 지역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사람의 삶을 품어주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착’의 본질이고, 지방을 소멸이 아닌 재생의 길로 이끄는 첫걸음이다.
맺으며,
귀촌은 쉬워졌지만, 정착은 여전히 어렵다. 지방 소멸 시대의 진짜 해법은 ‘이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정착 조건’의 설계다. 정착이 가능한 마을은 단지 집이 있고 일자리가 있는 곳이 아니라, 관계, 자율성, 공동체, 성장 가능성이 모두 함께 있는 구조다.
앞으로의 정책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유치했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함께 살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지방 소멸은 사람이 떠나는 현상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없는 구조를 방치한 결과다.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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